‘모세의 기적’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기적’이었다. 한국 육상의 간판선수 여호수아(27·인천시청)가 한국 남자육상 ‘노메달 레이스’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호수아는 지난 4일 막을 내린 2014년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200m와 1600m 계주에서 각각 동메달과 은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겨줬다. 여호수아의 이번 메달 획득은 지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장재근 선수가 금메달(200m)을 목에 건 이후 28년 만이고, 1600m는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16년 만이다.
지난 6일 오전 여호수아의 부친 여재선(57)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청목교회(인천 주안동)를 찾아 여호수아가 만들어낸 역전의 드라마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아시안게임 1년 뒤인 1987년 4월 5일 서울 구로구의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미숙아 신세를 겨우 면한 듯한 아기가 태어났다. 산모가 임신했을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그런지 신생아는 너무 말라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서른이 된 산모의 남편은 가난한 신학생이었다. 입원비가 걱정돼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내를 출산하자마자 병원에서 데리고 나왔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인천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꼬챙이처럼 깡마른 아기에게 젖부터 물렸다. “분유나 이유식을 먹일 처지가 못 돼 모유만 먹였어요. 그러나 네 살 때까지 젖을 빨던 아이는 ‘우후죽순’처럼 컸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땐 6학년 형들을 이길 정도로 힘이 세고 잘 달렸어요.” 어머니 최순애(56) 사모의 이야기다.
‘스쿨버스 고사’ 거부한 ‘부상자’ 선수
여 목사는 비쩍 마른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강하고 담대하게 자라나라’는 의미로 성경의 인물 ‘여호수아’로 지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그의 시선이 여호수아에게 쏠렸다. 재능이 아깝다고 판단한 여 목사는 아들을 주안남초등학교에서 육상부가 있는 용현남초등학교로 전학시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인천남중을 나와 인천체고를 졸업할 때까지 여호수아는 ‘부상자’로 통할 정도로 ‘이름값’을 해내지 못했다. 더군다나 양쪽 발바닥 오목한 부위에 생긴 부골(뼈) 통증으로 잘 달릴 수가 없었다. 수술하면 괜찮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자칫하면 아예 운동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수술하는 것을 단념했다.
인천체고 3학년 때 신앙심이 흔들릴 수 있는 사건이 그를 괴롭혔다. 학교가 스쿨버스를 새로 구입하고 고사를 지내는 일에 학생회장인 여호수아를 세운 것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여호수아는 몇몇 크리스천 반장들에게 잠시만 기다려줄 것을 요청한 뒤 아버지 여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를 끊은 여호수아는 단호하고 정중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고사를 지낼 수 없다”고 버텼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을 각오했다. 하지만 아무도 여호수아의 당돌한 태도에 대해 문제를 삼지 않았다.
스파이크 대신 군화를 신고
여호수아는 발바닥이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냈다. 소년체전에 출전해 세 번 입상했다. 2006년 성결대(체육교육과)에 체육특기자로 입학한 뒤에도 여호수아의 신앙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식이 열리던 날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졸업한 선배들까지 참석한 환영식에서 맥주잔으로 건배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4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술과 담배를 할 수 없습니다.”
환영회 분위기는 싸늘했다. 대신 벌을 받은 선배들이 화장실로 데리고 가 “이번 한 번만 먹어줄 수 없겠느냐”고 애원을 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결국 ‘열외’가 됐다. 이날부터 ‘여호수아에게는 술을 권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성적도 날로 좋아졌다. 한국 주니어대회 100m 종목에서 10초88로 1등을 차지하며 국내 부동의 1위 자리를 이어갔다. 2010년 제91회 전국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100m에서는 10초51으로 1위를 기록해 국내 단거리 간판선수로 등장했다. 하지만 곧바로 시련이 뒤를 이었다. 같은 해 광저우아시안게임 400m 계주에서 허벅지 뒷근육(햄스트링) 부상으로 성적이 부진했다.
여론의 거센 화살을 맞았지만 여호수아는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석사학위까지 마친 여호수아는 2011년 11월 29일 입대해 21개월 군복무를 마치고 지난해 9월에 제대했다. 원래는 4주 동안 훈련을 받고 나머지는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는 조건이었으나 8개월만 연습하고 대표선수 소집이 안 되는 바람에 다시 무국화체육단(경찰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스파이크 대신 군화를 신고 떨어진 낙엽을 쓰는 등 육상과는 상관 없는 보직으로 13개월을 보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 기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군대생활을 통해 원칙대로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죠. 참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도 덤으로 얻은 교훈입니다.” 제대 3주 만에 열린 2013년 전국체전에서 2관왕을 차지해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기적은 지난 2일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일어났다. 여호수아는 사실 1600m 계주팀이 아니었지만 허벅지를 다친 최동백(20·한국체대)의 대타로 출전, ‘기적의 레이스’를 펼쳤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남자 400m 계주에서 팀 동료가 바통 전달 실수로 실격을 당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믹스존(공동취재구역)을 통과하는 순간, 김복주 기술위원장이 여호수아를 불러 세웠다. “네가 마지막 주자로 뛴다. 너만 믿는다.” 1600m 종목은 한 번도 연습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주자인지도 잘 몰랐다. 출발 신호가 울리기 30분 전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진 상황. 여호수아는 마지막 주자로 바통을 이어받고 앞만 보고 달렸다. “조금만 더 달려라.” 5일째부터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 부친의 음성이 들리는듯했다. 결승선 통과 직전 누군가 뒤에서 미는 듯한 강한 힘을 받고 트랙에 곤두박질쳤다. 3분4초03. 한국신기록으로 일본(3분01초88)에 이은 값진 은메달이었다. 2위로 달리던 사우디아라비아를 0.004초차로 제친 대역전 드라마였다.
‘4대 신앙 명가’ 기적은 이제부터
1호선 전철 주안역에서 내려 마을버스 514-1번을 타고 쌍용아파트 앞에서 내리면 길 건너에 아담한 청목교회가 보인다. 청목교회는 도심 속 전원교회로 교회학교 30여명을 포함해 150여명의 교인들의 안식처다. 14년 전 통나무로 지은 교회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장 같다. 교회 안팎에는 여 목사 부부가 가꾸고 있는 올리브, 감람나무, 무화과 등 100여종의 식물들로 가득했다. 바깥 풍경도 아름다웠지만 녹차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교회 안 분위기도 평온하고 아늑했다.
여호수아 선수의 선대 고향은 황해도 장연이다. 증조부 용운(평신도)이 복음을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6·25때 혈혈단신 목포로 피란 온 조부 정철(전도사)은 남은 가족을 데려오려고 미군 함정을 타고 황해도로 들어갔다. 하지만 16세에 인민군에 끌려간 큰아들은 어찌할 수 없었고 조모와 세 고모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조부 정철 전도사는 해남과 진도에 교회를 세운 뒤 58년 충북 진천 이월면으로 거처를 옮겨 문백장로교회를 세웠다. 78년 59세를 일기로 정철 전도사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여 목사는 모친을 모시고 누님들이 출가해 살고 있는 인천으로 올라왔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여 목사는 다니던 대학도 포기하고 몇 해 동안 방황하다 80년대 초 인천 용현동 팔복교회에서 최 사모를 만나 마음을 잡고 부친의 유언대로 신학도가 됐다. 83년 결혼에 골인, 이듬해 첫 아들 준영(31·백석대 신학대학원), 87년 여호수아를 낳고 이듬해 목사 안수를 받았다. 여 목사는 자신이 아들에게 해준 것이 거의 없다고 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스파이크 한 켤레도 제대로 사 준 적 없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등록금을 한 푼도 준 적이 없지만 아들은 장학금으로 공부해 석사학위까지 받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이 하셨지요.”
서른을 앞둔 여호수아의 아름다운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천아시안게임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여호수아는 이달 말 열리는 전국체전을 시작으로 다시 주자로 선다. 내년엔 베이징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4년 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부상으로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불명예를 씻는다. 그가 목표로 하는 대회는 2016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이다. 여호수아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