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출4:24~26)
출애굽을 위해 모세가 쓰임받기 전, 할례를 시키지 않던 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했으나, 그의 아내인 십보라가 그 일을 알아채고 얼른 아들을 고통가운데 할례를 한 후 모세에게 호소하는 상황이다.
이 일 후에 모세는 하나님 뜻을 펼치려 애굽에 갈때 아내와 가정을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 때는 육신의 가정에 매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입장에 있기에 그의 아내로서 고통과 수고로 섬길 수 밖에 없었고, 그가 애굽에서 돌아오기까지 혼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남편없이 가정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와같이 십보라가 모세에게 "당신은 내게 피 남편이로다"라고 말한 것 처럼 우리(구원받은 교회)에겐 주 예수님이 피남편으로 고통과 수고없이는 섬길 수 없는 남편이다.
금요일 어머니 교제에서 이 말씀을 배우면서 난 육신의 남편을 생각해 보았다.
신앙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합당한 모습이 에베소서 5:22~29 절과 베드로전서 3:1~7절에 나와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3:1)
이 말씀은 나에게 아주 찔리는 구절이다.
주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결혼생활의 거반 남편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해 순복하지 않은 일들과 기도와 행실보다 말만 무성한 것들로 채워왔었다. 남편을 주로 섬기듯 고통과 수고로 섬겨오지 못한것 같다.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벧전3:2)
아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건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온유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남편에게 순종하고 복종한다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편은 아내를 볼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겠는가?
또한 남편에 대한 구절도 새롭게 다가온다
남편 된 자들아 이와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3:7)